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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왕실 재정과 세금의 숨겨진 이야기

by 실험용임123 2024. 9. 25.

여러분, 중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세금을 냈을까요? 그리고 그 돈은 어디에 쓰였을까요? 오늘은 재미있고도 복잡한 중세의 세금 제도와 왕실 재정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지금과는 많이 다른 그때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재미있을 거예요. 자, 이제 중세의 지갑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돈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대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보일 거예요!

중세의 다양한 세금들

중세 시대에도 세금은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과는 많이 달랐죠. 어떤 세금들이 있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봉건적 의무와 세금

중세 초기에는 세금이라기보다는 '의무'에 가까웠어요. 농노들은 영주에게 노동력을 제공해야 했죠. 일 년 중 일정 기간은 영주의 땅에서 일해야 했어요. 이걸 '부역'이라고 해요.

또 농노들은 자기가 생산한 농산물의 일부를 영주에게 바쳐야 했어요. 이건 일종의 '현물세'였죠. 예를 들어, 수확한 밀의 10분의 1을 영주에게 주는 식이었어요.

재미있는 건 이런 세금이 꼭 농산물이 아니어도 됐다는 거예요. 어떤 지역에서는 닭이나 달걀을 세금으로 냈대요. 심지어 토끼나 꿀벌도 세금으로 냈다니, 상상이 가나요?

이런 방식의 세금은 돈이 별로 유통되지 않던 시기에 적합했어요. 하지만 점차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현물세는 줄어들고 돈으로 내는 세금이 늘어났답니다.

도시의 발달과 새로운 세금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가 발달하고 상업이 활성화되었어요. 그러자 새로운 종류의 세금들이 생겨났죠.

대표적인 게 '관세'예요. 도시에 들어오는 상품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거죠. 도시마다 성문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상인들의 물건을 검사하고 세금을 걷었어요. 어떤 도시는 이 관세 덕분에 엄청난 부자가 되기도 했대요.

또 '길드세'라는 것도 있었어요. 길드는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데, 이 길드에 소속되려면 세금을 내야 했죠. 그 대신 길드는 회원들의 권리를 보호해주었어요.

'시장세'도 중요한 세금이었어요. 시장에서 물건을 팔려면 이 세금을 내야 했죠. 보통 판매액의 일정 비율로 정해졌어요. 재미있는 건 이 세금 덕분에 오히려 시장이 더 활성화되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세금을 내는 대신 도둑이나 사기꾼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었거든요.

교회와 세금

중세에는 교회도 중요한 세금 징수자였어요. 가장 유명한 게 '십일조'죠. 모든 신자들은 수입의 10분의 1을 교회에 바쳐야 했어요. 이게 꼭 돈일 필요는 없었어요. 농부라면 수확물의 10분의 1을, 목축업자라면 가축의 10분의 1을 바쳤죠.

교회는 또 '면죄부'를 팔기도 했어요. 이건 죄를 용서받기 위해 돈을 내는 거였죠. 지금 보면 이상하지만, 당시에는 아주 흔한 일이었어요. 이 면죄부 판매는 나중에 종교 개혁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답니다.

교회 세금 중에는 재미있는 것도 있었어요. '혼인세'라고, 결혼할 때 내는 세금이 있었대요. 또 '장례세'도 있어서 죽을 때도 세금을 내야 했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세금을 내야 했던 셈이에요.

이렇게 다양한 세금들이 있었지만, 징수 방법은 체계적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탈세도 많았고, 세금 때문에 갈등도 자주 일어났답니다. 하지만 이런 세금 제도가 점차 발전하면서 오늘날의 근대적 세금 제도의 기초가 되었다고 해요.

왕실의 수입원

자, 이번에는 왕실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알아볼까요? 세금만으로는 부족했거든요.

왕실 영지에서 나오는 수입

왕도 큰 영주였어요. 왕실이 직접 소유한 땅이 있었죠. 이걸 '왕실 영지'라고 해요. 이 땅에서 나오는 수입이 왕실의 중요한 돈줄이었어요.

왕실 영지에서는 농사를 짓기도 하고, 가축을 기르기도 했어요. 거기서 나오는 농산물이나 축산물을 팔아서 돈을 벌었죠. 또 숲이 있는 영지에서는 나무를 팔기도 했어요.

재미있는 건 왕실 영지의 농노들은 다른 영주의 농노들보다 조금 더 나은 대우를 받았대요. 왜냐하면 왕의 직속 농노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왕의 농노가 되는 게 낫다'는 말도 있었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왕들은 점점 더 많은 돈이 필요해졌어요. 그래서 왕실 영지를 팔거나 신하들에게 나눠주는 일도 많아졌죠. 그러다 보니 이 수입원은 점점 줄어들었답니다.

특별 과세와 강제 대부

왕은 필요할 때마다 '특별세'를 걷을 수 있었어요. 보통 전쟁이 일어나거나 왕실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이런 세금을 걷었죠.

예를 들어, 왕자나 공주가 결혼할 때 '혼인세'를 걷었어요. 또 왕의 장자가 기사가 될 때도 특별세를 걷었대요. 심지어 왕이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을 때 그를 되찾아오기 위한 '몸값세'를 걷기도 했어요. 영국의 리처드 1세가 십자군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을 때 이런 일이 있었대요.

또 왕은 부자들에게 강제로 돈을 빌리기도 했어요. 이걸 '강제 대부'라고 해요. 물론 나중에 갚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실제로 갚는 경우는 별로 없었대요. 그래서 사실상 세금이나 다름없었죠.

이런 방법들은 귀족들의 반발을 샀어요. 특히 영국에서는 이런 문제 때문에 귀족들이 들고일어나 마그나 카르타라는 문서를 만들게 되었죠. 이 문서에는 왕의 과도한 세금 부과를 제한하는 내용이 들어있었어요.

화폐 주조권과 그 남용

왕은 돈을 찍어낼 수 있는 권리, 즉 '화폐 주조권'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게 큰 수입원이 되었죠.

왕은 금이나 은으로 동전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동전의 실제 가치보다 더 높은 가치를 매겼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1그램의 은으로 만든 동전을 1.2그램의 가치가 있다고 정하는 식이었죠. 이 차이가 바로 왕의 수입이 되었어요.

문제는 일부 왕들이 이걸 남용했다는 거예요. 돈이 필요할 때마다 동전의 귀금속 함량을 줄이고 액면가는 그대로 두는 식으로 말이에요. 이걸 '화폐 악주'라고 해요.

이렇게 되면 물가가 오르고 경제가 어려워져요. 실제로 프랑스의 필리프 4세는 이런 방법으로 돈을 많이 찍어냈는데, 그 결과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대요.

하지만 화폐 주조권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만은 아니었어요. 이건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했죠. 그래서 새 왕이 즉위하면 꼭 새 동전을 만들었대요. 동전에 새긴 왕의 얼굴은 일종의 '중세의 SNS'였던 셈이에요.

세금 징수의 실제

자, 이제 실제로 세금은 어떻게 걷었는지 알아볼까요? 생각보다 복잡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아요.

세금 청부업자의 등장

왕이나 영주가 직접 세금을 걷기는 어려웠어요. 그래서 '세금 청부업자'라는 사람들이 생겼죠. 이들은 일정액을 왕에게 지불하고 세금 징수권을 얻었어요.

세금 청부업자들은 자기들이 낸 돈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걷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 보니 주민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세금 청부업자들은 대부분 미움을 받았어요. 성경에 나오는 '세리'가 바로 이런 사람들이에요.

재미있는 건, 이런 방식이 의외로 오래 지속되었다는 거예요. 심지어 프랑스 혁명 직전까지도 이런 제도가 있었대요. 세금 청부업자들 중에는 엄청난 부자가 된 사람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혁명이 일어나자 그들 대부분은 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해요.

지방 관리와 세금 징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관리들이 세금을 걷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특히 잉글랜드에서는 일찍부터 이런 제도가 발달했죠.

'셰리프'라는 지방 관리가 세금을 걷었어요. 여러분이 로빈 후드 이야기에서 들어본 그 셰리프 맞아요. 셰리프들은 매년 런던에 가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대요. 이때 특별히 만든 체스판 모양의 계산대를 썼는데, 이게 바로 오늘날 재무부를 뜻하는 '엑스체커'의 어원이 되었어요.

프랑스에서는 '바이이'나 '세네샬'이라는 관리들이 이 일을 맡았어요. 이들은 세금을 걷는 것 외에도 재판을 하고 군대를 이끄는 등 다양한 일을 했죠.

하지만 이런 관리들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어요. 그들도 종종 뇌물을 받거나 세금을 착복했거든요. 그래서 왕들은 '순회 판사'라는 사람들을 보내 이들을 감시하곤 했어요. 순회 판사들은 지방을 돌아다니며 관리들의 비리를 조사했죠. 이런 제도 덕분에 조금씩 세금 징수 체계가 개선되어 갔답니다.

세금 장부와 '둠스데이 북'

세금을 효과적으로 걷으려면 누가 얼마나 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해요. 그래서 세금 장부가 만들어졌죠.

가장 유명한 게 영국의 '둠스데이 북'이에요. 1086년에 윌리엄 1세가 만든 거대한 토지 대장이죠. 전국의 모든 마을, 농장, 숲, 그리고 거기 사는 사람들의 수까지 꼼꼼히 기록했어요. 심지어 돼지 한 마리도 빠뜨리지 않고 세었대요.

이 책의 이름이 재밌어요. '둠스데이'는 '최후의 심판의 날'이라는 뜻이에요. 그만큼 꼼꼼하고 피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이런 이름이 붙었대요. 실제로 이 책에 기록된 내용은 거의 법적 효력을 가졌어요.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장부들이 만들어졌어요. '테리에'라는 영지대장이 대표적이죠. 이런 장부들 덕분에 세금 징수가 좀 더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세금 징수는 여전히 어려웠어요. 장부를 만들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과 달라지곤 했거든요. 인구가 변하고, 새 마을이 생기고, 전쟁으로 마을이 없어지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종종 장부를 새로 만들어야 했는데, 이게 정말 큰 작업이었답니다.

왕실 재정의 관리

자, 이제 걷은 세금은 어떻게 관리했을까요? 지금처럼 체계적이진 않았지만, 나름의 방식이 있었답니다.

재무관의 역할

왕실의 돈을 관리하는 사람을 '재무관'이라고 불렀어요. 영어로는 '트레저러'인데, 지금의 재무장관과 비슷한 역할이었죠.

재무관은 정말 중요한 자리였어요. 왕의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 맡았죠. 때로는 성직자가 이 일을 맡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성직자들은 글을 읽고 쓸 줄 알았고, 계산에도 능했거든요.

재무관의 일은 쉽지 않았어요. 세금이 제대로 걷혔는지 확인하고, 왕실의 지출을 관리하고, 필요할 때 돈을 조달하는 등 할 일이 정말 많았죠. 게다가 당시에는 컴퓨터도 없고 계산기도 없었으니, 모든 걸 머릿속으로 계산해야 했어요.

재미있는 건, 재무관들이 종종 왕보다 더 부자가 되곤 했다는 거예요. 그만큼 권력이 컸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위험한 자리이기도 했어요. 돈 문제로 왕의 미움을 사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거든요.

회계 시스템의 발달

세금을 관리하려면 정확한 회계가 필요해요. 중세에도 나름의 회계 시스템이 있었답니다.

가장 유명한 게 '엑스체커 시스템'이에요. 앞서 말한 체스판 모양의 계산대를 사용한 방식이죠. 이 계산대 위에 동전을 올려놓고 계산을 했어요. 일종의 중세판 주판이라고 할 수 있죠.

또 '탤리 스틱'이라는 것도 사용했어요. 이건 나무 막대기에 금액을 새겨 넣은 거예요. 막대기를 반으로 쪼개서 채무자와 채권자가 각각 가졌죠. 나중에 다시 맞춰보면 위조가 불가능했거든요. 놀랍게도 이 방식은 19세기까지 영국에서 사용되었대요.

이런 방식들이 지금 보면 원시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꽤 정교한 시스템이었어요. 이를 통해 왕실의 수입과 지출을 관리했고, 국가 재정의 기초를 다졌답니다.

왕실 금고와 보물

왕들은 자신의 재산을 안전하게 보관할 장소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왕실 금고'가 생겼죠.

보통 성이나 수도원의 가장 안전한 장소에 금고를 만들었어요. 두꺼운 벽과 튼튼한 문으로 지켜진 이곳에 금은보화와 중요한 문서들을 보관했죠.

재미있는 건, 이 금고가 단순히 돈을 보관하는 곳만은 아니었다는 거예요. 일종의 박물관 역할도 했답니다. 진귀한 보물들, 예를 들어 유니콘의 뿔이라고 믿어진 것들(사실은 나르왈의 엄니였겠지만요)이나 이국적인 동물의 박제 같은 것들도 여기에 보관했어요.

또 왕실 금고는 은행의 역할도 했어요. 귀족들이 자신의 귀중품을 여기에 맡기기도 했거든요. 물론 그 대가로 돈을 내야 했지만요. 이렇게 해서 왕실은 또 다른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이런 금고도 완전히 안전하진 않았어요. 전쟁이 일어나면 약탈당하기 일쑤였죠. 그래서 왕들은 종종 금고의 내용물을 이동시켜야 했어요. 英국의 존 왕은 자신의 보물을 옮기다가 그만 진흙탕에 빠뜨려 잃어버렸다는 슬픈(?) 이야기도 있답니다.

왕실 재정의 위기와 해결책

중세 후기로 갈수록 왕실 재정은 점점 더 어려워졌어요. 왜 그랬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해결하려 했을까요?

전쟁 비용의 증가

가장 큰 문제는 전쟁 비용이었어요. 중세 후기에는 전쟁의 규모가 커지고 기간도 길어졌거든요. 특히 백년 전쟁 같은 긴 전쟁은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 되었죠.

기사들의 갑옷이 점점 더 정교해지고 비싸졌어요. 또 화약 무기가 등장하면서 더 많은 돈이 필요해졌죠. 성을 공격하는 대포 하나 만드는 데도 어마어마한 돈이 들었대요.

게다가 용병을 고용하는 일도 많아졌어요. 이들에게 돈을 제때 주지 않으면 아군의 영토를 약탈하기도 했죠. 그래서 왕들은 항상 전쟁 자금 마련에 골머리를 앓았답니다.

차입과 부채의 증가

돈이 부족해지자 왕들은 돈을 빌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자국의 부자들에게 빌렸죠. 하지만 곧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졌어요.

그래서 등장한 게 국제 은행가들이에요. 특히 이탈리아의 은행가들이 유명했죠. 메디치 가문 같은 대부호들이 유럽 각국의 왕들에게 돈을 빌려주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빌린 돈을 갚는 건 쉽지 않았어요. 이자도 엄청났거든요. 그래서 많은 왕들이 빚더미에 앉게 되었죠. 어떤 왕들은 빚을 갚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어요.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그랬는데, 그 바람에 당시 유럽 최대 은행이었던 바르디 은행이 파산했대요.

새로운 재정 체계의 모색

이런 위기를 겪으면서 왕들은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그래서 나온 게 좀 더 체계적인 세금 제도였죠.

프랑스에서는 '탈리'라는 정기적인 세금이 만들어졌어요. 처음에는 임시 세금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고정 세금이 되었죠. 영국에서는 의회의 승인을 받아 세금을 거두는 제도가 발달했어요. 이게 나중에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원칙으로 발
했답니다.

또 관료제도 정비되었어요. 전문적으로 재정을 담당하는 부서가 생겼죠. 프랑스의 '회계원'이나 영국의 '재무부'가 대표적이에요.

이런 변화들은 근대 국가의 재정 제도로 발전해 갔어요. 물론 이 과정에서 왕의 절대 권력이 조금씩 제한되기도 했지만요.

자, 여기까지 중세의 세금과 왕실 재정에 대해 알아봤어요. 어떠셨나요? 생각보다 복잡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았죠?

사실 세금과 재정 이야기가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답니다. 세금을 어떻게 걷고 어디에 썼는지를 보면,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알 수 있는 거죠.

여러분도 기회가 되면 옛날 동전이나 세금 장부 같은 걸 한번 보세요. 박물관에 가면 이런 것들을 전시해 놓은 경우가 많아요. 그걸 보면서 그 돈을 만지고 세금을 냈던 사람들의 삶을 상상해보는 거예요. 그러면 역사가 좀 더 가깝고 실감나게 다가올 거예요.